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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8. (토)

법인세법의 내국법인 판단기준에 법인도치규정을 도입하자

안창남 <강남대 교수>

해외 투기자본인 론스타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소송 중에 있다. 끈질기다. 전후 사정은 이렇다. 미국 사모펀드인 론스타 펀드Ⅲ가 2001년 벨기에에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 ‘스타홀딩스’를 통해 매입한 서울 강남의 스타타워 빌딩을 2004년 싱가포르 법인에 매각한 뒤 2,450억원의 양도차익을 얻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한푼도 안냈었다.

 

그 이유는 당시 한․벨기에 조세조약상 벨기에 법인(스타홀딩스)이 한국에서 주식 양도소득이 있을 경우, 한국에서는 비과세하고 벨기에에서만 과세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물론 한국법인이 벨기에에서 주식 양도소득이 있는 경우, 벨기에에서는 비과세하고 한국에서만 과세한다). 그리고 벨기에에서는 우리나라나 미국보다 훨씬 낮은 세율(5%)로 세금을 낸다. 그 뒤 벨기에 법인은 미국 사모펀드 가입자들에게 한국 스타타워 빌딩의 양도차익 중 일부를 나눠주는 이른바 Tax Planning을 세웠던 것이다.

 

이는 미국 론스타가 직접 한국 스타타워 빌딩을 사고 팔았을 경우보다 훨씬 세금부담이 적다. 왜냐면 한국에서 높은 세율로 세금을 납부했어야 했기 때문이다(한․미 조세조약은 부동산법인인 주식 양도를 부동산 양도소득으로 보아 한국에서 과세하도록 돼 있다).

 

한편 과세관청은 벨기에 법인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설립된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 즉  ‘껍데기 회사’임에 착안해, 한․벨기에 조세조약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 회사 너머에 있는 미국과 버뮤다의 론스타 펀드Ⅲ의 가입자가 결국 한국 스타타워 빌딩의 양도소득을 가져갔다고 봐,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론스타 펀드Ⅲ가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라고 판단해서 양도소득세 부과는 잘못이라고 했고 이에 따라 과세관청은 양도소득세 부과를 취소하고 그 대신 론스타 펀드 Ⅲ에 대해 법인세를 부과했다. 그리고 제1심 법원은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문제는 이와 같은 공격적인 조세회피 공식이 론스타 뿐만 아니라 【외국 →한국투자】 및 【한국 →외국투자】의 경우에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쟁점은 ‘조세피난처의 껍데기에 불과한 페이퍼컴퍼니(이 글에서는 A라 함)’를 세법상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이른바 세법상 법인격 부인의 문제다. 이는 A를 납세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자를 납세자로 본다. 이러면 세금부담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세법은 A를 일단 외국법인으로 본다. 따라서 A의 우리나라 납세의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서만 부과한다. 속지주의 과세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우리나라 법인 중 국외소득(예:중국과 무역업)이 많은 경우, 굳이 국내에 본점을 둘 이유가 없다.

 

만일 A가 중국 영업을 하여 이익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과세권이 없다. 국외소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세피난처는 A에 대해 과세를 하지 않고 하다고 해도 낮은 세율로 부과한다.  또한 중국에 A의 고정사업장이 없다면 원천징수 정도의 낮은 세율로만 중국에서 과세된다.

 

이 경우 한국은? 조세피난처 A가 국내주주에 배당을 해주면 배당소득에 대해 세금 납부의무가 있다. 배당을 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니 배당을 안하고 현지에서 주주가 돈을 받아 쓰고 만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조세 조정에 관한 법률의 조세피난처 세제가 있긴 하지만, 너무 구멍이 숭숭해서 빠져나갈 공간이 많다.

 

이래서 미국 국세청이 손을 빼들었다. 만일 A의 의결권 있는 주식 60% 이상을 미국인이 소유하고 있고 A가 실제 사업(business)을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만 활동한 경우, 이를       ‘surrogate foreign corporation(의역하면 ‘형해화된 법인’쯤 된다)’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A를 미국 법인으로 의제한다. 이를 법인 도치(法人倒置 :  corporate inversion)규정이라고 한다. 이러고 나면 A의 미국외 소득에 대해서도 미국에서 과세가 가능하다. 그 이유는 미국 법인세가 속인주의 과세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도치규정은 결국 상법상 법인 설립의 자유를 일정한 경우 세법에서 부인하고 과세한다는 취지다. 이와 같은 경향은 프랑스의 조세피난처 기업에 대한 입증책임 전환 규정, 독일의 조세기본법 제42조(abuse of tax planning schemes)개정을 통해 조세피난처 페이퍼 컴퍼니에 대해 법적 실질이 아닌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하겠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실질과세원칙이 있지만 아직도 법적 실질의 끈을 놓고 있지 않다. 이를 무시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중요하다. 하지만 조세피난처의 경우에는 달리 생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왜냐면 그 곳은 세법이 그리 싫어하는 조세회피와 탈세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겨우 이 사정을 이해했다. 그리고 판결(대법 2008두8499, 2012. 1. 19. 선고)을 통해 법적 실질이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경제적 실질도 중요함을 일깨워 줬다. 그러나 실질과세 근거법인 국세기본법 제14조의 조문에 포괄적인 내용이 많아 과세관청과 납세자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조세피난처에 대한 세법상 대처는 지금보다 훨씬 솔직해지고 대담해져야 한다. 즉 미국 등의 입법례에서 보는 것처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 A를 세우고 그 법인의 주식 중 상당수를 내국인이 보유하고 있다면, A를 내국법인의 보고 속인주의 과세원칙을 적용해 A의 한국외 소득을 세법에 따라 당당하게 과세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조세공평부담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틀린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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